오래된 5층짜리 아파트가 좋은 점은.
요즘 아파트 같이 삭막하지 않다는 거다.
군데군데 자리한 낡은 벤치와
길다면 긴 세월을 견뎌낸 어중간한 크기의 가로수.
거리를 활보하는 도둑고양이 떼와
되살아난 야구소년들의 깡깡 거리는 알루미늄 배트소리.
20년 전의 내 어린시절 살던 아파트와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.
해가 비치는 한가한 오후에 잠시 산책 나와,
동네백수마냥
트레이닝복 바람에 스테인레스 머그잔을 들고
아파트 벤치에 앉아 있으면.
문득 변한 것 하나 없는 공간에
나만 어른이 되어 있는 것 같은 묘한 기분에
그냥 커피만 홀짝 거린다.